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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과 불안 같은 기분장애가 장내 미생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개선하거나 건강한 대변을 이식하는 것만으로도 기분과 정서적 증상이 호전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개념이 정신건강학과 의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대변 이식으로 우울증이 호전된 실제 사례
네이처(Nature)는 18일 “장내 미생물을 잘 돌보는 것이 왜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완화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캘리포니아대학교 발레리 테일러 교수팀이 진행한 임상시험을 소개했다.
우울증 치료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 앤드루 모제슨은 2023년 건강한 기증자의 대변을 장에 이식(FMT: 대변 미생물 이식) 받은 뒤 불과 일주일 만에 기분이 나아지는 경험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항우울제가 전혀 효과가 없었는데 완치된 것 같다”라고 말한다.
장 내 미생물과 정신건강의 연관성
연구에 따르면 장 내 미생물은 단순히 소화를 돕는 존재가 아니라,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신경망을 통해 신체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고 부른다.
2016년 아일랜드 코크대학과 중국 충칭의과대학 연구진은 동물 실험을 통해 “우울증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가 무쾌감증(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과 불안 행동을 보였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뇌의 전두엽과 해마에서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변화까지 나타난 점은 장내 미생물이 정서적 반응에 직결된다는 강력한 근거가 됐다.
프로바이오틱스와 장 건강 관리의 중요성
최근에는 대변 이식(FMT)뿐 아니라 프로바이오틱스, 프리바이오틱스(유익균 먹이), 식이섬유 등이 정신건강 관리의 새로운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김치, 된장, 요구르트 같은 발효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면 장내 유익균이 활성화되고, 이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우울감을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세로토닌의 약 90%가 뇌가 아닌 장에서 합성된다는 사실은 장 건강과 기분의 연관성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정신건강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
지금까지 우울증 치료는 주로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약물치료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약물만으로는 호전되지 않는 난치성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면서, 장내 미생물 균형을 회복하는 방식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안전성과 향후 연구 과제
다만 아직까지 대변 이식 치료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건강한 대변을 이식한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동일한 효과를 얻는 것은 아니며, 감염 위험이나 윤리적 논란도 존재한다. 따라서 더 많은 임상시험과 장기적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
우울증과 불안 같은 기분장애가 단순히 뇌 속의 문제만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정신건강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을 의미한다. 장내 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의 정신의학과 영양학 연구를 긴밀히 연결하는 핵심 주제가 될 것이다.
“마음의 문제는 곧 장의 문제”라는 말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