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전복 가격이 2024년 들어 급격히 하락하며 수산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한때 '바다의 명품'으로 불리던 전복은 최근 10kg당 2만 원 선이 무너질 정도로 산지 가격이 내려갔고,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을 넘는 구조적 문제의 신호로 해석됩니다. 소비 패턴 변화, 공급 과잉, 유통 구조의 비효율성, 수입산 해산물과의 경쟁 등 복합 요인이 얽히며 전복 시장의 수급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본문에서는 전복 가격 하락의 원인과 유통·소비 변화, 양식 산업의 구조적 과제 및 대응 방향을 심층적으로 정리합니다.
전복 가격 폭락, 원인은 복합적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수산업 관측센터에 따르면 2024년 8월 전복 산지가격(10kg 기준)은 약 1만 9420원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 대비 약 6.9% 하락했습니다. 2021년 같은 달(약 2만 870원)과 비교하면 명확한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전복 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소비 부진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식문화가 간편식·가공식품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손질과 조리가 필요한 고급 수산물의 가정 내 소비가 줄었습니다. 외식업계 역시 경기 둔화로 고가 메뉴를 축소하는 경향이 이어졌습니다. 둘째는 공급 과잉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전복 양식 면적과 양식장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더불어 해수 온도의 변화는 일부 지역에서 전복의 번식과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해 공급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KMI 통계는 올해 전복 출하량이 전년 대비 약 11.9% 증가한 약 2만 6102톤 수준이라고 보고합니다. 수요는 정체된 반면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 하락은 필연적입니다. 셋째는 수입산 해산물의 저가 공세입니다. 중국·베트남 등으로부터 유입되는 냉동 전복과 유사제품이 가격 경쟁을 심화시키며 국내산 전복의 시장 점유율과 가격 결정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일부 유통과 외식업체는 원가 절감을 위해 수입산과 혼합해 사용하거나 저가 제품을 대체재로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비 둔화, 공급 증가, 수입 경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해 전복 시장의 균형이 깨진 상태입니다.

소비 패턴 변화와 유통 구조의 한계
전복은 과거 명절 선물세트나 보양식의 대표 품목으로 자리매김했으나 최근 소비 행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층과 1~2인 가구의 증가는 '간편성'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촉발했고, 이에 따라 손질·조리 과정이 번거로운 전복보다 이미 손질되어 있거나 간편 조리가 가능한 냉동 새우, 연어, 조개류 등에 수요가 쏠리고 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 생선 손질을 꺼리는 문화적 요인도 전복 수요 약화의 배경입니다. 유통 측면에서는 전복이 신선도에 민감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도매·중도매·소매에 이르는 유통 단계가 복잡하고 물류비·저장비용이 높은 구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비용이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어,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체감합니다. 온라인 직거래와 새벽 배송 같은 신유통은 가능성을 열었지만 냉장 포장비·배송비 부담으로 인해 소규모 양식어가의 직접 진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유통 효율화 없이는 생산자 가격이 하락해도 소비자 가격에 큰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유통 마진이 줄어들지 않아 생산자가 더 큰 손실을 입는 구조가 지속될 위험이 큽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지 직송을 활성화하고 저온 유통비 절감, 공동포장·공동물류 등의 협업 모델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양식업 공급 과잉과 생산 체계의 문제
전복 양식은 상대적으로 초기 투자와 기술이 요구되지만, 정부 지원 정책과 지역별 양식 장려로 양식 면적이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전남 완도·고흥·해남 등 전통적 전복 생산지에서는 양식장 수가 늘어나면서 피크 시즌에 출하 물량이 집중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양식업은 계절적·환경적 변수에 민감해 생산 조절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는데, 어민들이 시장 가격 상승 기대에 출하를 미루거나 반대로 유통업체의 수요 정보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하를 결정하면 단기간에 공급 과잉이 발생해 가격이 급락합니다. 또 소규모·가족 경영 중심의 영세 양식업 구조는 가격 충격을 흡수할 재무적 여력이 부족합니다.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고, 일부 어가는 운영 지속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응 전략 - 스마트 양식과 출하 조절
정부와 지자체는 단기적 피해 완화와 중장기 체질 개선을 병행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출하 조절, 긴급 수매, 보관·가공을 통한 초과 물량 흡수 등이 고려됩니다. 장기적 대책으로는 스마트 양식 기술 도입, 생산-유통 연계 플랫폼 구축, 공동 브랜드화와 직거래 확대가 핵심으로 제시됩니다. 스마트 양식 클러스터는 IoT 센서·수질 관리 시스템·자동 급이 장치 등을 통해 생산 효율을 개선하고 질병·환경 위험을 조기 감지해 손실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출하 시기를 분산하고 수요 예측에 근거한 생산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해 공급 과잉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도입에는 초기 비용 부담과 운영 역량이 필요하므로, 중소 어가가 참여하도록 보조금·기술 교육·공동 설비 제공 등 보완 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유통 혁신과 판로 다변화
유통 혁신은 전복 가격 회복의 또 다른 관건입니다. 산지 직송 플랫폼과 공동 포장·저온 물류 체계 구축을 통해 유통 단계를 축소하면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에 전복을 구매할 수 있고, 생산자는 가격결정력 회복과 안정적 판로 확보가 가능합니다. 또한 가공식품 개발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전복죽, 전복 라이스페이스트, 건조·분말 제품, 스낵류 등 다양한 가공품은 소비의 계절성과 신선도 제약을 완화해 안정적 매출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와 연구기관의 협력을 통한 레시피 개발, 품질 인증, 식품 안전성 확보는 가공품의 신뢰도를 높여 소비자 수요를 확대하는 데 기여합니다.
브랜딩과 소비 촉진 전략
소비자 인식 전환을 위한 브랜딩과 마케팅도 필수적입니다. 전복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되, 합리적 가격대의 제품 라인을 개발해 일상 소비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손질된 전복', '즉석 전복죽', '전복 스틱' 등 간편 조리형 제품을 통해 1~2인 가구와 젊은 소비층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지역 브랜드화를 통해 산지의 특성과 품질을 홍보하고, 산지 방문 체험·요리 클래스·온라인 라이브 커머스 등을 연계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또한 품질 인증제·원산지 표기 강화는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정품 소비를 유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자체·중앙정부의 역할과 지원 과제
정부와 지자체는 단기적 가격 안정 조치와 함께 중장기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패키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산지 출하 조절을 위한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 스마트 양식 기술 보급을 위한 재정 지원, 공동 저온 물류센터와 가공 시설 구축 지원, 직거래 플랫폼 구축을 통한 유통 혁신 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영세 양식 어가를 위한 금융·보험 상품 개발과 재난 대응체계 보강은 산업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중요합니다. 또한 수입산과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통관·검역 절차와 품질 기준을 강화하고, 국내산 전복의 우수성을 소비자에게 적극 홍보해야 합니다.
사례와 현장 목소리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자구책이 진행 중입니다. 전남 완도의 몇몇 양식조합은 출하 시기를 조정하고,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 저장·가공 설비를 운영하며 초과 물량을 가공식품으로 전환하는 시범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또한 지역 축제와 연계한 '전복 소비 캠페인'을 통해 외식 업소와 연계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단기 수요를 창출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절박합니다. 한 중소 양식업자는 "기름값·사료값 등 생산비는 오르는데 유통 구조와 수요가 개선되지 않으면 다음 시즌도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유통 관계자는 "유통에서의 비용 절감과 신뢰할 수 있는 품질 보증이 이뤄지면 소비자 가격 저항도 줄어들 것"이라며 유통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전복 가격 폭락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소비 생태계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출하 분산, 긴급 수매, 가공 전환 등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생산·유통·소비 전반에 걸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스마트 양식과 공동 브랜드화, 산지 직송과 저온 물류 인프라 구축, 가공품 개발과 소비자 맞춤형 제품 라인 확충이 병행될 때 전복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 재정·정책 지원, 민간의 기술·유통 혁신, 그리고 소비자의 인식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전복은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라 지역 경제와 해양 생태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자원입니다.
모두가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때 비로소 가격의 안정화와 산업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